영원한 의혹! / 영원한 분노! / 영원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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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6(02:11)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프라임 (prime020@thrunet.com) 조회수 : 4987 , 줄수 : 195
딴지 독투에서 퍼 왔습니다 [법 좋아 하는 닉스와 같네요]

27살 여성노동자의 애절한 사연...도와주세요...
이 글을 보신 분들은 다른 통신망에도 많이 퍼날라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전에 동국합섬 정희양님이 돌아가셨느데...이땅의 노동자, 특히 여성의
인권은 너무 열악합니다. 이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감사합니다.27살 처녀 김경현을 도와 주세요!

대자보 편집부

본지 대자보(http://jabo.co.kr)에 <경현이를 도와 주세요>라는 제보가 들어 온 것은 지난 달 25일이었다. 제보를 읽으면서 대자보 편집실은 모두가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전 세상을 달리한 "암으로 죽은 동국합섬 노동자 정희양 님의 호소문"이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직업병이면서도 직업병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보상금 한 푼 처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한 채 주검으로 변한 정희양 님이 마치 살아서 <경현이를 도와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긴급 편집회의가 열리고 직접 취재를 시작하였다.

<김경현 살리기 대책위>의 실무 책임을 맡은, <민주주의 민족통일 인천연합>의 노동위 담당 이혜정 님을 만나 사건을 취재하였으나 김경현 본인의 취재는 불가능했다. 인천 성모자애병원의 정신병동에 격리 입원 중인 김경현에게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병원측의 뜻이었다.

* 김경현을 도와 주세요 *

- 사건 발단 월간<아름다운청년>11월호에
실린 김경현 님의 휠체어 탄 모습

금년 27세(72년생) 처녀 김경현은 1999년 4월, 문서를 파쇄하는 "문서 세단기" 제조회사인 <대진기계>에 일용직으로 취업하였다.
김경현은 문서 세단기 제조에 필요한 부품 생산 라인에 일하였으며 자신이 일하는 라인이 부품 이상으로 인한 고장이 잦았으며 따라서 불량 제품이 자주 나왔다고 주장한다.

사건이 일어난 날인 1999년 9월 18일 오후 3시경에 생산부 상사들이 모두 회식을 나간 상태에서 몇 명의 생산부 직원들이 업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때 인사과 <유종태 차장>이 생산부로 들어 와 무작정 생산부 직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기 시작했고 김경현은 생산 작업에 묵묵히 충실하고 있었다.

1. 사건 일지

99.09.18일 오후 3시경 :


-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김경현에게 다가 온 유종태는 "너는 뭐하는 거냐? 왜 그렇게 불량품이 많아서 내가 위에서 욕을 듣게 하느냐?" 등의 말과 함께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김경현은 "현재 조립작업 중이며, 불량품이 한두 번 나온 것도 아니고 불량 원인을 정확히 말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그리고, 생산부의 문제는 계통을 밟아 문제를 지적해 주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 그러자 유종태는 주변에 있던 생산 박스를 집어 던지며 폭력을 휘두르려고 하였으며 주위의 사원들이 말려 상황은 종료되었다.

- 김경현은 여자 탈의실에 올라 가 동료 직원인 아주머니 한 분과 마음을 안정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유종태는 탈의실로 뛰어 들어 와 무작정 김경현을 주먹으로 목덜미를 가격하고 바닥에 넘어진 김경현의 가슴을 발로 걷어 찼다고 주장한다.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말리던 아주머니도 손가락을 삐었다고 한다.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 온 남자 사원들이 유종태를 끌어 안아 탈의실 밖으로 끄집어 내었다.

- 이러한 상황을 전해 들은 생산부 직원들이 유종태를 찾아 문제를 제기하였고 유종태는 전체 사원들 앞에서 사과를 했다.

99.09.19일 :

- 일요일 종일 집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계속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몸이 힘이 들었다.

99.09.20일 :

- 아침에 겨우 출근을 하였으나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동료 직원인 아주머니를 대동하여 인천 세안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요청했다. 찜질 등의 일반적인 물리 치료를 받던 중 잠시 선잠에 들었고 깨어나면서부터 전신에 힘이 빠지며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을 느꼈다.
담당 의사는 '마비 증세'가 오는 것이라며 큰 병원으로 빨리 옮겨 치료 받을 것을 제시했고 김경현은 곧 <인하대 병원>으로 갔다.

- 오후에 인하대 병원 응급실에서 신경 손상일 경우 수술에 들어 가야 한다고 했으나 MRI 촬영에서 신경 손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하였고 이어서 척수 검사 등의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다. 소견이 정확히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하반신 마비는 계속 되었다.

99.09.21일 - 99.10.20일

회사측은 유종태의 폭행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규정해 내지 못하고 있는 김경현 가족측에 무성의로 일관하였으며 가족들의 항의에 못이겨 1999.09.21일 인천 성모자애 병원으로 옮겨 재검사를 시도했다.

99.10.04일 :

김경현의 딱한 소식을 들은 인천의 여러 시민 단체들이 모여 <김경현 살리기> 대책위를 설립하고 실무 책임을 인천연합의 이혜정 님이 맡기로 결정했다.

99.11.01일 :

<전환장애>의 가능성이 높아 정신과 치료가 시급하다는 병원측의 진단에 따라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정환장애란? 심각한 충격이나 쇼크, 스트레스가 신체화되는 현상으로 심각한 구타나 정신적 충격 후 다음 날 나타나기도 한다. 며칠 내에 낫기도 하나 일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신적 질환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정확한 치료 기간을 설정하기 어려운 병이다.

99.12.02일 현재 :

병원측은 김경현의 병세가 별 다른 진전이 없다고 판단했고 오늘 현재 의사 소견서에는 장기간의 치료를 요구하고 있었다.











2. 회사측과 가해자인 유종태의 태도

대진기계측은 비정규직 사원들의 일자리 확보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여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한 시간 이상의 잔업을 진행하였고 토요일에도 항상 오후 5시까지 연장근로를 시켰다고 김경현 측은 주장했다.
또한 김경현이 입사 5개월이 넘도록 의료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았으며, 비정규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경우 <고용촉진기금>이 일인당 월 50만원 이상 <고용보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정규직으로 입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김경현은 비정규직일 때 일당 2만원, 월 50만원이 채 못되는 급여를 수령했으나 고용촉진기금이 적용된 후에도 그 급여액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겨우 50만원을 넘긴 상태라고 급여 명세서를 증거로 내 보였다.

정규직일 때 근로기준법 및 급여 계산 등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을 의식한 대진기계 측은 "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었다"라는 입장 표명을 이리저리 둘러대고 있다고 <김경현 살리기 대책위>는 주장하고 있다.

99.09.21일:

김경현이 하반신 마비 상태가 진행되던 다음 날인 21일 대진기계 대표이사는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99.09.22일 :

전날 대표이사의 책임지겠다는 말을 문서화로 만들어 증거로 남기자는 가족들의 주장에 대표이사는 자술서를 쓰겠다고 하였고, 본인 작성의 자술서를 가지고 김경현에게 주었으나 내용에 있어 부족한 점이 많다며 김경현은 자술서를 더욱 상세히 기술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자술서를 대표이사에게 돌려 주었다.

99.09.27일 :

추석 휴가가 끝난 후 관리책임자인 한 이사가 병원으로 찾아 와 "책임지지 못하겠다. 법적으로 해결하라"는 일방적 통보를 하고 돌아 갔다. 폭행으로 인한 구체적인 진단 결과가 없다는 것을 빌미로 회사 측은 모든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99.09.28일 :

가족들이 회사를 방문하여 항의하자, 회사측에서 경찰서로 연락하여 무단침입 및 업무방해로 고소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종태는 김경현의 폭행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자동으로 폭행 고소 건이 성립되었다.

99.09.30일 :

김경현 측은 인천 북부 노동 사무소에 대진기계를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사업장 내 폭행)으로 고소하였다.

99.10.05일 :

회사 측에서 합의를 위한 대화를 요구했다. 회사 측은 현재까지의 치료비와 이후 1-2개월 정도의 치료비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가족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치료비 전액과 이후 후유증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여 합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99.10.05일 이후 몇 번의 합의 대화가 있었으나 서로의 의견에서 전혀 좁혀질 진척이 없었다.

- 성모자애 병원에서 의사가, 합의가 이루어지면 환자에게 상당한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고 하여 10월 4일에 구성된 대책위에서 회사 측에 대화를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이유가 없다며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절했다.
회사 측에서의 대화 거절 이유는, 가족들이 민사 소송을 염두에 두어, 대진기계 측의 재산 도피의 개진성을 느껴 가압류를 신청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했다.

99.11.08일 :

아침 출근 시간대에 대진기계 앞에서 항의 집회가 시작되었고 그러자, 회사 측은 합의 대화를 다시 요구해 왔으나 99.12.02일 현재까지 별 다른 진전이 보이질 않고 있다.












3. 현재까지의 합의 진척 상황

- 대책위 및 가족들의 요구 사항 :

치료비 전액과 계호비, 향후 1등급 장애기준 산재법에 의거한 1,831일간의 장애 보상 (일당 25,000원 계산), 위로금 (4,000만원), 장애 보조구 구입비 등 약 1억원.
일정기간 지난 후 생길 수 있는 후유증에 대해 재합의 한다는 조항.

- 회사측의 입장 :

위로금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장애보상에 대한 노동력 상실 기간이 너무 길어 기간을 6개월로 줄이자. 전환장애 진단이 나온다면 책임지겠다. 회사측 안을 수용하기 싫으면 모든 것을 법적으로 해결하자.

4. 병원의 진단 결과:

- 인하대 병원 :

하반신 마비 증상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불확실하다. 정신과와의 협의시 <전환장애>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 인천 성모자애 병원 :

전환장애다.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

5. 현재까지의 입원비 및 치료비용 현황

칠순을 앞둔 노부모를 모신 김경현 가족들은 겨우 식생활을 해결할 정도의 가난한 서민이다. 그래서 치료비용에 대한 해결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회사측은 인하대 병원 입원에 쓰여진 740만원이라는 비용 중 180만원만 지급하고 손을 뗀 상태다.

대책위에서는 각 개인들이 빚을 내어 우선 인하대 병원 입원에 쓰인 금액을 지불한 상태이다.

인천 성모자애 병원의 입원에는 현재까지 약 300여만원의 비용이 산출되었으나 해결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입장이다. 격리 입원해 있어야 할 입장이라 앞으로 비용이 얼마나 더 증가할지 막막하다.

6. 고소 고발 건

- 대책위 측:

폭행에 따른 유종태의 고소 건은 현재 불구속 기소 상태이다. 재판도 진전이 전혀 없다.
근로기준법 위반에 따른 고소도 기소 상태만 유지할 뿐이다.
사업장 내의 열악한 근로 조건에 대해서 인천북부 노동사무소에서 시정 조치를 내렸을 뿐 다른 조치는 없다.

- 회사측 :

항의를 하러 온 대책위와 김경현 가족 측에 대해 '주거침입' '명예훼손' '업무방해'를 걸어 고소를 한 상태이며 항의 과정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을 빙자하여 '폭행'으로 고소한 상태이다.

* <김경현 살리기 대책위> 전화번호 및 성금 모금 통장 계좌번호>*

전화번호 : 032) 505-6374 담당 이혜정
통장번호 : 평화은행 307-21-0196-710 예금주 (김경현)
한미은행 430-03039-270 예금주 (이혜정)


* 회사측 전화번호 및 소재지 *

1. 대진기계
주소지 : 인천시 부평구 청천2동 403-22 대표이사 강태욱
전화번호 : 032) 512-4562 주요 생산품 : 문서 세단기
주요납품처 : 해양경찰청, 인천지방경찰청, 인천보호관찰소 등
관공서 다수


2. 가해자 유종태
주소지 :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 273 유승그린 apt 101-505호
전화번호 : 032) 547-1760

취재 : 태인규 상인고문(chasseur@jabo.co.kr)

인터넷 정론지 <대자보> http://jabo.co.kr 에서는
항상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보 : edit@ja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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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스 3억 도메인사건의 의혹을 밝히는 마지막 그 날까지..."